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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야기/성지순례

[터치바이블 성지순례 9] "브엘세바 — 족장들의 우물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물이 자주 등장한다. 우물을 파고, 빼앗긴 우물 때문에 항의하고, 흙으로 메워진 우물을 다시 판다. 물을 발견했는데도 다툼이 일어나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도 한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살아가는 족장들에게 왜 우물 문제가 이토록 중요했을까? 성경의 지도를 펼쳐 그들이 머물렀던 곳을 살펴보면 우물을 둘러싼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읽히기 시작한다.

 

세겜과 헤브론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브엘세바에 이른다. 세겜이 중앙산지의 두 산 사이에 자리하고 헤브론이 높은 산지에 자리한다면, 브엘세바는 네게브 북부의 건조한 지역에 자리한다. 브엘세바 골짜기는 북쪽의 유다 산지와 남쪽의 네게브 고지대 사이에 펼쳐져 있다. 이 지역의 와디는 비가 내릴 때 일시적으로 물이 흐르는 골짜기이면서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였다. 지표에 물이 흐르지 않는 동안에도 땅 아래의 수원을 찾아 우물을 팠으므로, 골짜기 주변의 지하수는 이동과 거주에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비가 그친 뒤에도 사람과 가축은 물을 마셔야 했다. 이곳에서 우물을 확보하는 일은 가족과 가축이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1. 약속의 땅에서도 물이 필요했던 족장들

족장들은 양과 소를 거느리고 이동했다. 가축을 먹일 목초지를 찾아야 했지만 풀이 있다고 해서 어느 곳에나 머물 수는 없었다. 물이 있어야 했다. 우물을 파는 데에는 노동이 필요했고 물을 발견한 뒤에는 그 우물을 사용할 권리도 확보해야 했다. 따라서 우물을 둘러싼 다툼은 물을 누가 마실 것인가의 문제와 함께, 누가 그곳에 머물며 살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이어졌다.

 

창세기 21장에서 브엘세바의 물 문제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언약에 앞서 나온다. 아브라함의 집을 떠난 하갈은 아들과 함께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한다(창 21:14).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는 아이를 관목 아래에 두고 떨어져 앉는다. 이어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자 그가 우물을 발견하고 부대에 물을 채워 아이에게 마시게 한다(창 21:15–19). 이 우물을 뒤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우물과 같은 것으로 볼 근거는 없다. 그러나 같은 장에 놓인 두 이야기는 브엘세바 주변에서 물을 얻는 일이 사람의 생존과 얼마나 밀접했는지를 보여 준다.

 

창세기 21장 후반부에서는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을 찾아온다. 그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하며, 자신과 자신의 후손에게 거짓되게 행하지 말라고 요청한다(창 21:22–23). 아브라함이 머물고 있는 땅에도 자신이 베푼 것과 같은 호의를 베풀어 달라는 요구였다. 아브라함은 맹세하겠다고 답한다. 그런데 곧이어 우물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다.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그 일을 항의하고 아비멜렉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일이라고 답한다(창 21:25–26). 여기에서 우물 분쟁을 해결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은 우물을 빼앗은 종들과만 다투지 않고 아비멜렉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창세기 20장은 아비멜렉을 그랄의 왕으로 소개하며, 그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땅에서 거주할 장소를 선택하도록 허락했다고 기록한다(창 20:2, 15). 이 문맥에서 우물 분쟁은 거류하던 아브라함과 그 땅의 통치자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다. 땅에 대한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도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사람들과 물의 사용을 둘러싼 관계를 맺고 있었다.

 

2. 왜 아브라함은 암양 일곱 마리를 따로 세웠을까?

아브라함은 양과 소를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은 언약을 맺는다. 그런데 그때 아브라함이 암양 새끼 일곱 마리를 따로 세운다. 아비멜렉도 그 행동이 궁금했다.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창 21:29). 아브라함은 그 뜻을 설명한다.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창 21:30).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그 우물을 팠다는 사실이다. 아비멜렉이 암양을 받는 행위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암양 일곱 마리는 우물을 사기 위해 지불한 값이었을까? 본문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이 판 우물을 사겠다고 말하지 않고 자신이 판 우물임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다. 막벨라 굴의 거래에서는 은 사백 세겔이라는 매매 대금이 명시되지만, 이곳에서는 암양을 받는 행위의 의미를 ‘증거’라고 밝힌다. 두 장면 모두 재산에 관한 권리를 다루지만 거래의 내용과 절차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다리우시 지아도시(Dariusz Dziadosz)는 브엘세바의 언약을 다룬 연구에서 이 장면을 고대 근동의 증여와 권리 인정 관행에 비추어 설명한다. 그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선물을 받는 행위가 그가 우물을 팠으며 그 우물에 대한 권리를 지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증거가 된다고 본다(Dziadosz, “The Covenants of the Patriarchs with Foreigners at Beersheba,” The Biblical Annals 13/3, 2023, 351–352쪽). 이러한 비교는 가축을 건네는 행동이 두 사람의 관계를 정하는 절차였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이를 어느 특정 법전의 조항이 그대로 적용된 사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브엘세바라는 이름에는 이 사건이 담겨 있다. 히브리어 בְּאֵר שֶׁבַע(베에르 셰바)에서 ‘베에르’는 우물을 뜻한다. 본문은 일곱 마리의 암양을 언급한 뒤, 두 사람이 그곳에서 맹세했으므로 브엘세바라고 불렀다고 설명한다(창 21:31). ‘일곱’을 뜻하는 שֶׁבַע(셰바)와 ‘맹세하다’를 뜻하는 שָׁבַע(샤바)의 소리가 서로 연결된다. 브엘세바에서 ‘일곱의 우물’과 ‘맹세의 우물’이라는 의미를 함께 읽는 까닭이다. 지아도시도 본문에서 ‘일곱’과 ‘맹세’에 해당하는 표현들이 지명의 유래를 함께 설명한다고 지적한다(Dziadosz, 같은 논문, 347쪽). 이것은 본문이 지명의 뜻을 사건과 연결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일곱 마리의 암양과 두 사람의 맹세가 우물의 이름 안에서 서로 맞물린다.

 

앞선 헤브론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은 사라를 장사하기 위해 막벨라 굴을 샀다. 브엘세바에서는 자신이 판 우물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았다. 창세기의 기록에서는 브엘세바의 언약이 막벨라 굴의 구입보다 먼저 등장한다. 두 이야기를 함께 읽으면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는 아브라함의 처지가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자신이 판 우물에 대해 그곳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했고 사라를 묻을 땅을 얻기 위해서는 값을 지불해야 했다. 창세기는 땅에 대한 약속을 기록하면서 그 땅에서 이루어진 협상과 합의도 자세히 전한다.

 

언약을 맺은 뒤 아비멜렉과 비골은 돌아가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창 21:32–33). 히브리어로는 אֵל עוֹלָם(엘 올람)이다. 본문은 나무를 심는 행위의 상징적 의미를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우물에 관한 언약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같은 장소에 기록한다. 이어 아브라함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다고 전한다(창 21:34). 브엘세바는 우물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은 장소이면서 아브라함이 거주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장소로 남는다.

 

3. 이삭은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팠다

이삭의 우물 이야기는 흉년에서 시작된다. 그는 그랄의 아비멜렉에게 갔고 하나님은 그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자신이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창 26:3).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약속을 이삭에게도 확인해 주셨다. 이삭은 그랄에 거주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의 재산이 늘어나면서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이 나타난다.

 

이삭을 가축만 몰고 다니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이 장면의 일부를 놓치게 된다. 창세기는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백 배의 수확을 얻었다고 기록한다(창 26:12). 이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들이 많아졌으며,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했다고 말한다(창 26:13–14). 본문에 나타난 이삭의 생활에는 목축과 경작이 함께 있었다. 우물 분쟁도 이러한 재산의 증가와 주변 집단의 경쟁이라는 문맥 안에 놓여 있다.

 

창세기 26장은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종들이 팠던 우물들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고 기록한다(창 26:15). 아비멜렉도 자신들보다 강성해진 이삭에게 떠나라고 요구한다. 이삭은 그랄 골짜기로 옮겨 장막을 치고 아버지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다. 본문은 그 우물들이 아브라함이 죽은 뒤에 메워졌다고 설명하고, 이삭이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다시 불렀다고 덧붙인다(창 26:17–18). 우물을 다시 파는 행위와 옛 이름을 되살리는 행위가 함께 기록된 것이다. 물을 얻는 시설뿐 아니라 그 우물과 아브라함을 연결하는 이름도 아들에게 이어졌다.

 

여기에서 지도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세기 26장의 우물 이야기가 모두 브엘세바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이삭은 그랄 골짜기에서 우물을 둘러싼 다툼을 겪고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판 뒤 브엘세바로 올라간다. 이 이동을 따라 읽어야 우물의 이름과 사건의 흐름이 분명해진다. 본문은 이삭이 옮겨 다녔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만 각각의 우물 사이의 거리나 정확한 경로까지 제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지도를 읽을 때에도 본문이 알려 주는 이동의 순서와 오늘날 확정할 수 있는 위치를 구분해야 한다.

 

이삭의 종들은 골짜기를 파다가 샘물이 솟는 우물을 발견했다. 본문은 이를 בְּאֵר מַיִם חַיִּים(베에르 마임 하임)이라고 부른다(창 26:19). 직역하면 ‘살아 있는 물의 우물’이다. 윌리엄 레이번과 유언 프라이(William D. Reyburn and Euan McG. Fry)는 이 표현이 지표 아래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물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Reyburn and Fry, A Handbook on Genesis, United Bible Societies, 1997, 창 26:19 주석). 같은 표현은 레위기의 정결 의식에 사용되는 물에도 등장한다(레 14:5–6, 50–52). 창세기 26장에서는 먼저 물의 성격을 설명하는 말로 읽어야 한다. 이삭의 종들은 땅을 파다가 지속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수원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물을 발견한 것으로 문제가 끝나지는 않았다. 그랄의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들과 다투며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했다(창 26:20). 이삭은 그 우물을 에섹이라고 불렀다. 다른 우물을 팠으나 또 다투게 되자 그 이름을 싯나라고 불렀다. 에섹에는 ‘다툼’, 싯나에는 ‘적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창 26:20–21).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는 누가 우물을 팠는지가 쟁점이었다면, 여기서는 그랄의 목자들이 물 자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다만 본문은 그들이 어떤 관행이나 근거를 내세웠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삭의 종들이 물을 발견했어도 그 사용을 둘러싼 분쟁은 계속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삭은 그곳에서도 옮겨 가 우물을 팠다. 이번에는 다툼이 없었다. 그는 그 우물을 르호봇이라고 부르며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라고 말했다(창 26:22). 르호봇에는 ‘넓은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본문은 이 이름을 ‘넓게 하셨다’는 이삭의 말과 연결한다. 에섹과 싯나가 갈등을 기억하는 이름이라면, 르호봇은 더 이상 그 우물 때문에 다투지 않았던 상황을 기억하는 이름이다. 세 우물의 이름을 따라 읽으면 이삭이 겪은 분쟁과 이동의 과정이 드러난다.

 

그곳에서 이삭은 브엘세바로 올라간다. 그 밤 하나님은 자신을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밝히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창 26:24). 이삭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장막을 친다. 그의 종들은 그곳에서도 우물을 판다(창 26:25).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장소에 이삭의 제단과 장막, 우물이 함께 등장한다. 앞서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파고 그 이름을 되살렸던 이삭의 이야기는 이제 브엘세바에서 아버지의 하나님을 부르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4. 브엘세바에서 다시 맺은 언약

브엘세바에 머무는 이삭에게 아비멜렉이 찾아온다. 그와 함께 온 사람은 그의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이었다. 이삭은 자신을 미워하여 떠나게 했던 사람들이 왜 찾아왔는지 묻는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삭과 함께하심을 분명히 보았다고 답하며 언약을 제안한다(창 26:26–28). 아브라함에게 했던 말과 비슷하다. 두 이야기 모두 상대가 하나님이 족장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언약을 요청한다.

 

그런데 그들의 설명에는 이삭의 질문과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이삭은 자신을 미워하여 내보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선한 일만 행하고 이삭을 평안히 보냈다고 주장한다(창 26:27, 29). 앞선 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것이다. 창세기는 어느 한쪽의 말로 이 차이를 지우지 않고 두 발언을 나란히 기록한다. 이삭은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그들은 함께 먹고 마신다. 이튿날 아침 서로 맹세한 뒤 이삭은 그들을 평안히 보낸다(창 26:30–31). 갈등을 되짚던 대화가 공동 식사와 맹세를 거쳐 관계를 정리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지아도시는 이 대목에서 과거 관계에 대한 언급, 상대에게 요구하는 약속, 맹세와 식사 등의 요소를 고대 근동의 언약 절차와 비교한다(Dziadosz, “The Covenants of the Patriarchs with Foreigners at Beersheba,” 2023, 355–356쪽). 그의 설명을 참고하면 잔치를 베풀고 함께 먹는 장면도 합의를 맺는 과정의 일부로 읽을 수 있다. 성경 안에서도 야곱과 라반이 언약을 맺는 장면에 식사와 맹세가 함께 등장한다(창 31:44–54). 브엘세바의 언약은 이처럼 구체적인 말과 행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바로 그날 이삭의 종들이 우물에서 물을 발견했다고 보고한다. 이삭은 그 우물을 세바(שֶׁבַע, 셰바)라고 부르고, 본문은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라고 설명한다(창 26:32–33). 창세기 21장에서 이미 설명한 지명의 유래가 이삭의 이야기에서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아비멜렉과 비골, 족장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정, 맹세와 우물, 브엘세바라는 이름이 두 본문에 반복된다. 두 전승의 형성 관계는 별도로 검토할 문제이지만 현재의 창세기에서는 이러한 반복을 통해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이삭의 이야기가 연결된다. 두 세대에 등장하는 같은 이름의 인물들이 어떤 관계인지 본문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텔 브엘세바를 방문하면 성문 가까이에 있는 우물과 지하 수리시설을 볼 수 있다. 두 시설은 물을 얻는 방식이 달랐다. 우물은 지하수를 길어 올리는 시설이고 지하 저수시설은 헤브론 와디에 흐르는 홍수의 물을 수로로 끌어들여 저장하는 시설이었다. 제에브 헤르조그(Ze’ev Herzog)가 집필하고 츠비카 추크(Tsvika Tsuk)가 편집한 이스라엘 자연공원청의 현장 안내서에 따르면, 저수시설은 깊이 약 17미터의 수직 통로와 계단, 백악질 암반을 파고 회반죽을 바른 저장 공간, 홍수를 끌어들이는 수로로 이루어졌다. 다섯 공간으로 나뉜 저수시설은 약 700세제곱미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었다(Herzog, Tel Beer Sheva National Park, “15. The water system” 항목). 성문 가까이의 우물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을 공급했다면 성안의 저수시설은 주로 포위 상황에서도 주민들이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

 

현재 텔 브엘세바에서 볼 수 있는 도시 유적의 중심은 족장 시대보다 훨씬 후대인 철기시대에 속한다. 따라서 눈앞의 우물을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팠던 우물로 확인할 수는 없다. 헤르조그와 릴리 싱어아비츠(Lily Singer-Avitz)가 2016년에 펴낸 세 권의 발굴 종합보고서 『브엘세바 III』도 초기 철기 IIA기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정착지와 그 이후 철기시대 도시들을 다룬다(Herzog and Singer-Avitz, Beer-Sheba III: The Early Iron IIA Enclosed Settlement and the Late Iron IIA–Iron IIB Cities, Tel Aviv University Institute of Archaeology·Eisenbrauns, 2016). 다만 이러한 유적은 브엘세바에서 물을 확보하고 관리하는 일이 개인과 가축의 생존뿐 아니라 후대 도시의 존립에도 중요한 조건이었음을 보여 준다.

 

브엘세바의 기억은 야곱에게도 이어진다.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애굽으로 내려가던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에게 희생제사를 드린다(창 46:1). 그 밤 하나님은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며 자신이 함께 내려가겠다고 말씀하신다(창 46:3–4). 이삭은 흉년 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고, 야곱은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는다(창 26:2; 46:3). 서로 다른 상황에서 주어진 두 말씀 사이에 브엘세바라는 장소가 놓여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주했던 곳은 야곱이 애굽으로 떠나기 전에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장소가 된다.

 

족장들의 이야기가 지난 뒤에도 브엘세바는 성경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북쪽과 남쪽을 아우르는 말로 사용된다(삿 20:1; 삼상 3:20). 또한 아모스는 벧엘과 길갈을 언급하면서 브엘세바로 나아가지 말라고 경고한다(암 5:5). 이는 브엘세바가 후대에도 사람들이 찾아가는 종교적 장소였음을 보여 준다. 다만 이 기록만으로 족장 시대의 제단이나 제의가 중단 없이 이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브엘세바는 여러 시대의 기억이 겹쳐 있는 장소였다.

 

그렇다면 족장들의 우물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우물은 누가 그것을 팠는지를 증언하는 대상이었다. 이삭의 이야기에서는 물을 둘러싼 다툼과 이동의 흔적이 우물의 이름으로 남았다. 브엘세바라는 지명에는 맹세의 기억이 담겼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는 야곱의 제사로 이어졌다. 창세기는 족장들이 어느 땅에 살았는지만 기록하지 않는다. 그들이 물을 어떻게 얻었으며, 그 물을 사용하기 위해 누구와 다투고 누구와 합의했는지도 기록한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자신이 판 우물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았고 이삭은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파며 그 이름을 되살렸으며 야곱은 그곳에서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렸다. 브엘세바의 우물은 그렇게 족장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아갔던 땅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김진산 터치바이블 사역대표